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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자기癌과 싸우는 의사들 (3인) 조회수 : 4225
  번호 : 8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5.11.18
     
자기癌과 싸우는 의사들


1. 이희대(李羲大·53) 교수는 영동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소장이다.
암과 싸우던 그는 2003년 직장암에 걸렸으며 이후 암은 간과 골반뼈로 퍼졌다. 대장 절제와 간 전이암 수술 등을 세 차례 받았고 항암치료를 지금도 받고 있다. 그의 암 투병기는 암환자인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각 매체에서 10여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전국에서 암 강좌를 해달라는 신청이 폭주했다. 지난달 말 열린 암 특강에는 400석의 병원 강당 좌석이 모자랄 정도였다. 대장암 말기임에도 즐겁고 활기찬 일상을 보내는 ‘암환자 암전문의’로부터 암 관리와 예방법을 들어봤다. 그는 “암은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교통사고나 심장마비보다는 행복한 병”이라며 “암에 걸리면 다 죽는 게 아니라 당뇨병처럼 치료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만성 질환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암에 걸리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암을 이겨내면 예전보다 훨씬 체력도 좋아지고 올바른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암에 걸리고 나서 가족 사랑을 확인하고 세상의 일상의 기쁨을 알게 되니 이런 면에서 암은 축복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사람의 생명은 생기를 통해 유지되는데 암도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물리쳐야 한다”며 “삶의 희망이 바로 몸의 생기”라고 말했다.


2. 산부인과 의사 홍영재(洪榮載·62)’는 국내 산부인과 개업가의 대표 브랜드였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2001년까지 기혼 및 불임여성 사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개인 의원이었지만 한 달에 분만을 100번 하고 외래환자만 하루 150명이 넘었다. 점심먹을 시간조차 없던 그였다. 그러던 이 유명 산부인과 의사가 2001년 암에 걸렸다. 그것도 대장암과 신장암이 동시에 발견됐다. 지금 그의 대장은 4분의 1가량 잘려나갔고 왼쪽 신장은 없다. 이후 지독한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암을 극복했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 그는 ‘일’만 했다. 새벽 분만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그러다 죽는다…”고 경고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과가 끝난 저녁, 밀려오는 허기를 그는 등심, 곱창 등으로 채웠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 매일 먹었다. 고기 등 지방질 식사를 많이 하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대장암이 발견되기 1년 전, 대장 조영술에서 판단이 모호한 작은 병소가 나타났다. 그는 “괜찮겠지”라며 내시경 검사를 안 했다. 홍 원장은 “워낙 건강 체질이라 설마 내가 암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정작 자기 건강을 잘 안 챙긴다는 것이다. 2001년 10월 어느 날 심한 복통이 찾아왔다. 병원에 간 그는 태어나서 처음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대장암 3기’. 의사인 그는 늦게 발견된 암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 하필 나인가….” 잘나가던 이 의사 앞에 죽음의 두려움이 펼쳐졌다.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화불단행(禍不單行), 마음을 다스리고 수술 준비를 하던 중, 이번에는 왼쪽 신장에 또다른 암덩어리가 발견됐다. 신장암이었다.

◆어떤 의사를 선택하고 어떻게 치료 받았나
“1% 생존율에도 희망주는 의사 만나라”

그는 두 가지 암을 한번에 각각의 전문가에게 집중 치료받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홍 원장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지면 친한 선배 의사들이 직접 수술해주겠다고 달려들 것이 예상됐다. 우리 정서상 꼼짝없이 엮일 게 분명했다. 그는 대장암과 신장암 수술을 제일 잘하는 의사가 필요했다. 죽음 앞에 체면과 예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암수술과 상관없는 심장내과에 먼저 입원해서 전문가를 수소문했다. 대장암 수술은 미국 유명 암 센터에서 연수를 하고 돌아온 40대 젊은 외과 의사에게, 신장암은 손기술이 뛰어난 중견 비뇨기과 의사를 선택했다. 연륜보다 전문성에 중점을 둔 것이다. 유서를 아내에게 남긴 채, 자신의 생일 날 ‘대장암’ ‘신장암’ 수술을 한 번에 받았다. 수술은 성공했다. 이후 6개월 간 여섯 번의 항암제 집중 치료를 받던 중 담당 의사는 홍 원장의 체중이 너무 빠져서(80㎏?65㎏) 항암제 용량을 줄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어차피 그 용량은 서양인 기준이니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원래 용량 그대로 맞겠다고 했다. 일주일 내내 토하고 목젖까지 껍질이 벗겨졌다. 정말 죽다 살아났다는 것이다. 홍 원장은 “나중에 의사가 원래 용량을 쓰길 잘했다고 하더라”며 “치료에 임하는 환자의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암 투병하고 나서 보니
그는 현재 CT나 복강경 검사에서 암이 재발된 흔적은 없다고 한다. 건강도 회복했다. 그는 “가끔 산을 쳐다보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다”며 “아내의 웃는 모습 같은 자그마한 일상의 행복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예전에는 왜 모르고 지냈는지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암 예방법은 스트레스와 영양관리. 홍 원장은 “유대인들이 휴양지에 와서 놀지도 않고 하루종일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데 이제야 그게 왜 중요한지 알게 됐다”며 “일을 열심히 하는 만큼 그것과 똑같이 휴식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때론 자기를 완전히 놓아버리는 게으른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는 현대인은 영양 과잉 상태에서 암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에 따른 그의 지론은 소식(小食)과 균형식이다. 그는 “매일 다섯 가지 색깔 이상의 야채를 먹어야 한다”며 “균형있는 영양을 위해서는 반찬은 밥같이 먹고 밥은 반찬처럼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암환자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따라 절망하거나 삶에 대한 의욕을 불태운다”며 “만약 당신이 암환자가 된다면 단 1%의 생존율 앞에서도 희망을 주는 의사를 만나라”고 당부했다.



3. 한만청(韓萬靑·71) 전(前) 서울대병원장은 1998년 간암으로 오른쪽 간 거의 전부를 암과 함께 잘라내는 대(大) 수술을 받았다. 그것으로 끝날 것 같았던 암과의 싸움은 간암이 폐로 전이되면서 본격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말기 암을 이겨냈다. 그의 암 투병기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는 책은 암환자들의 필독서가 됐다.

◆어쩌다가 암에 걸렸나
: 불규칙 생활·과음… 간에 나쁜건 다해

그는 처음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크기면 당시 하던 고(高)농도의 알코올을 간암에 주사로 직접 찔러 넣는 방법으로 없앨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 간암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8년 시행한 복부 CT 사진을 본 한 원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 우측에 14㎝나 되는 암덩어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병원장 일에 방사선 의학교육 자료를 정리하느라 무리를 한 데다 불규칙한 생활에 술을 자주 먹었으니, 간에 나쁜 일은 다 했다”며 “설마 하는 생각에 내 건강을 과신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치료 전략을 짰나
: 최신치료법에 정통한 의사 말만 믿어
\"대체요법등 쓸데없는 藥 먹지 말라\"

그의 암 투병 전략은 치밀했다. 우선 감투나 명성보다는 최신 의학지식과 기술에 통달한 의사를 찾았다. 암 수술은 누구, 항암 치료는 누구, 이런 식으로 병원을 불문하고 그 분야 최고의 권위자를 찾아다녔다. 그는 “암 치료 의사는 다양한 최신 치료법을 알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그런 면에서 의사가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지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즉 의사가 자기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환자의 이익을 위해 방사선 치료나 항암제 치료 등 다른 진료과 의사에게 환자를 적시에 보내는 ‘열린 의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역설적으로 좋은 의사라면 불친절하거나 반말을 써도 상관없다고 했다. 존댓말이 병을 고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암 전문가의 간암 투병 생활은 어땠을까. 그는 “의사를 고른 후에는 전적으로 의사를 믿었다”며 “병세나 치료 과정에 대해 담당의사가 말하기 전에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